우리가 즐겨먹는 감자튀김은 어느 나라 음식일까요? 오늘은 그 감자튀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French Fri가 Freedom Fries로 바뀐 사건
감자튀김, 프렌치 프라이가 몇 년 전에 이름 때문에 고난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2003년 3월, 미국과 이라크 전쟁의 유탄이 엉뚱하게 감자튀김인 프렌치 프라이로 튀었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프랑스가 사사건건 전쟁에 반대하며 미국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중동에서 미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미국 정치인들은 프랑스와 관계되는 것은 무조건 싫어했습니다.
미국 하원에서 한번은 일이 벌어졌는데, 미국 하원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던 의원이 구내식당 메뉴 중 감자튀김인 프렌치 프라이의 이름을 프리덤 프라이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프랑스가 미웠던 만큼 프랑스를 상징하는 '프렌치'라는 이름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뉴욕 타임즈를 비롯해 언론으로 보도됟면서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말의 전쟁', 프렌치 프라이 원조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French fries의 본고장은 어디?
프렌치 프라이의 정확한 본고장은 아직까지 논쟁중입니다. 벨기에와 프랑스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거리음식에서 발달했다는 설, 원조는 벨기에인데 프랑스를 거쳐 영국과 미국으로 퍼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프렌치'라는 용어가 프랑스를 뜻하는 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French에는 "가늘게 자르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늘게 썰어서 튀긴 감자라는 뜻에서 프렌치 프라이ㅇ로 불렸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식품학자들은 프렌치프라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비롯됏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합니다. Freanch라는 형용사에서 근거를 찾기도 하지만, 감자튀김의 뿌리를 프랑스로 보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프렌치 프라이는 감자를 썰어서 기름에 튀긴 음식입니다. deep-frid방식으로 튀긴 것인데 유럽에서 딥 프라이드 방식으로 튀긴 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유행을 했다고 합니다.
또 유럽에서 감자를 먼저 먹기 시작한 나라도 프랑스이기 때문에 감자를 가늘게 썰어 기름에 튀긴 요리인 프렌치 프라이를 프랑스에서 받달한 요리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벨기에에서 발달해 퍼졌다는 이야기는 8세기 후반,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지역에서 먹던 감자튀김 요리가 프랑스로 전해지면서 지금 프렌치 프라이로 발달했다고 하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습니다. 벨기에에서는 17세기 뫼즈 강변 마을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주장이 유력한데, 당시 낚시꾼들이 생선대신 감자를 튀겨 먹었으며, 이후 벨기에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벨기에 감자 튀김은 두 번 기름에 튀겨 바삭한 식감을 낸 점이 특징이며, 일반적으로 마요네즈를 곁들어 먹습니다.
현재까지 어느 나라가 원조인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두 나라 모두 감자튀김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각자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감자 식용의 역사
유럽인들이 널리 감자를 먹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의 농학자 앙투안 파르망티에 덕분입니다.
남기가 원산지인 감자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탐험 이후 유럽에 전해지지만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감자를 먹지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감자는 기피 식물로 법으로 감자를 심지 못하도록 한 적도 있었습니다.
감자가 유럽에 처음 전해진 것은 1565년 스페인 탐험가이자 정복자인 골잘로가 감자를 황금 대신 스페인에 가져왔을 때였습니다.
나라별로는 영국과이탈리아에는 1585년, 독일은 1587년, 오스트리아는 1588년, 프랑는 1600년 무렵에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감자가 전해진 곳마다 사람들은 감자를 이상하고 독성이 있는 악마가 보낸 작물로 판단하였고 프랑스에서는 감자가 문둥병은 물론이고 전염병과 식중독을 일으키고 땅을 황폐화시킨다고 여겨 감자 재배를 금지하는 포고문이 내려지기도 했었습니다. 감자는 100년이 지나도록 거의 먹지 못하는 독초 취급을 당했었습니다.
유럽인들이 감자를 먹기 시작한 것은 18세기가 끝날 무렵으로 프랑스 육군 장교이고 농학자였던 앙투안 파르망티에 덕분입니다. 프랑스와 독일, 즉 프러시아가 싸웠떤 7년 전쟁에서 파르망티에는 프러시아의 전쟁 포로가 되었습니다.
프러시아 군대는 포로들에게 돼지가 먹는 먹이를 주었는데 바로 감자였습니다.
감자만 먹으며 연명을 했던 파르망티에는 감자가 먹으면 전염병에 걸리거나 동물 사료로 쓰는 작물이 아니라 사람이 먹어도 좋은 식량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흉년으로 대 기근이 발생하자 파르망티에가 감자를 재배해 먹도록 설득한 덕분에 프랑스 국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파르망티에를 비롯한 선각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감자가 널리 퍼진 것은 1785년의 흉년 때문이었습니다. 설득에도 불구하고 감자를 먹지 않다가 대기근이 들자 감자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1795년, 파리 코뮨의 포위로 파리에 식량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감자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러시아의 프레드리히 대왕은 감자를 먹으면 빵 값을 낮출 수 있고, 식량 기근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 군인과 농민들에게 감자를 보급했습니다.
1774년 프레드리히 대왕은 농민들에게 재배요 ㅇ감자를 무상 지급했지만 농민들은 " 이 이상한 물건은 냄새도 없고 맛도 없으니 개도 안 먹는데 우리에게 먹으라는 것이냐?"며 반발했지만 프레드리히 대왕은 감자를 심지 않으면 코와 귀를 베겠다고 협박한 것이 감자를 보급하게 된 계기였습닏나. 프레드리히 2세의 별명은 감자대왕으로 그의 무덤을 찾는 참배객들은 감자 꽃으로 화한을 바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