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은 요리 중 하나입니다. 그 독특한 맛과 비주얼에 고급 요리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천대받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랍스터의 유래와 매력에 대하여, 그리고 랍스터가 오늘날에는 왜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닷가재 때문에 파업하다
1602년, 102명의 청교도를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영국을 떠나 미국 메사추세츠주에 있는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 때부터 이주민들은 신대륙으로 건너와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미 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가며 농경지를 개척했지만 나중에 온 이민자들은 이미 만들어진 농장에서 처음 일을 하였습니다. 갓 도착한 이민자들을 모아놓고 농장주였던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여러분들에게는 앞으로 식사 때마다 따뜻한 물 한잔과 바닷가재를 제공할 것입니다."라고 연설했습니다. 고향에서 노동을 할 때 먹었던 거친 빵 대신에 식사 때마다 바닷가재를 주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고생문이 열렸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일꾼들이 바닷가재 때문에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파업의 원인은 바닷가재를 너무 자주, 많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사갈등의 주요 쟁점이 바로 식사였고,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 중의 하나가 일주일에 두번 이상 바닷가재를 먹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닷가재의 인생 역전
천대받던 바닷가재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미국 전역에서 고급요리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바닷가재는 주로 북동부의 메인 주와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에서 전 세계 공급물량의 상당부분이 잡힙니다. 알래스카나 호주, 베트남 산도 있지만 바닷가재는 차가운 바다 깊은 곳에서 사는 것이 품질이 좋고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미국과 캐나다 북동부 해안에서 잡은 바닷가재를 살아있는 채로 운송할 방법이 없어 산지에서는 공급이 넘치는데 조금만 떨어진 곳에는 아예 공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수급 불균형 현상으로 19세기 초까지 바닷가재가 산지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1820년에 수조를 갖춧 바닷가재 잡이 전용어선이 등장하면서 뉴욕 등지에 싱싱한 바닷가재를 공급할 수 있게 되어 북동부 메인주에서 벗어나 동부인 뉴욕과 보스톤을 중심으로 바닷가재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기 이전인 1842년 최초로,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에서 잡은 바닷가재가 철도를 통해 시카고까지 살아있는 채로 운송되었습니다. 당시 시카고의 유력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지는 이 사실을 뉴스로까지 보도했습니다. 드디어 통조림이 아닌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요리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철도의 발전으로 인해 랍스터가 중산층과 상류층의 식탁에 오르게 되면서 점차 고급 요리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랍스터는 더 이상 빈민의 음식이 아닌 호화로운 식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국 북동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바닷가재가 시카고에서는 부자들이 먹는 대표적인 고급요리가 된 것입니다.
이어 1869년에는 미국 대륙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메인 주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잡히던 바닷가재의 수요가 미국 전체로 뻗어나갔습니다. 바닷가재 수급에 역전 현상이 일어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바닷가재의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바닷가재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고급 요리로 대접을 받으며 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보관 및 운송 기술이 발달하면서 바닷가재의 가치가 바뀌고, 천덕꾸러기에서 부의 상징으로 가치이동이 되었습니다.
바닷가재는 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을까?
미국 개척 초기, 바닷가재는 가난의 상징으로 하인과 어린이, 노동자와 죄수들이 먹었떤 음식이었습니다. 바닷가재가 천대를 받았던 이유는 너무나 흔해서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있었습니다. 지금도 바닷가재는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에서 잡히는 것을 일품으로 여기지만 미국 초기 개척 시절, 메인 주와 매서추세츠 주에서는 바닷가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초창기 미국 이민 기록에서 브래드포드와 함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 지도자, 에드워드 윈슬로우의 편지에도 여름이면 해변이 바닷가재로 넘쳐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토마스 히긴슨이라는 사람이 17세기 초반,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이주민들의 상황을 묘사한 미국 개척민에 관한 책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새로 온 이주민을 만나 담배를 권했었는데 바닷가재 집게발로 만든 담뱃대였습니다. 흔한 바닷가재를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먹는 대신 밭의 비료로 뿌렸고, 집게발은 잘라서 낚시 바늘로 쓰거나 담뱃대로 이용했습니다.
랍스터는 오랜 역사와 함께 다양한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초고의 미식 요리로 자리잡았습니다. 빈민의 음식에서 고급요리로의 변신, 랍스터는 그 자체로도 매력이지만 유래와 이야기를 통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랍스터의 유래와 변천과정을 이해하면,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서 그 뒤에 숨겨진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에 랍스터 요리를 즐길 때에는 그 한입 한입이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이야기의 일부임을 기억하며 더욱 깊은 맛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